톄링 銀岡서원, 비각으로 100년 전 ‘장서 목록’ 보존
九月 08,2023

톄링 인강(銀岡·은강)서원은 청대 동북 지역의 첫 서원이며 동북 지역에서 유일하게 보존되어 온 고대 서원이다. 번화한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이 ‘사합원(四閤院)식’ 청대 건축군은 주변의 현대식 건축과 대비돼 더욱 고풍스러워 보인다. 앞서 인강서원은 중국 정부로부터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됐다.

 

‘서원’의 명칭은 당대에 처음 확인됐다. 일찍 서원은 서적을 소장하고 서적을 편찬하는 곳이었다. 송대에 이르러 서원은 강학의 장소로 변경되었지만 서적 소장 기능은 여전했다. 서원의 장서는 강학의 도구이자 중국 고대 서원 교육 제도의 중요 특징이다.

 

량강 톄링저우언라이소년독서옛터기념관 부관장은 “역사상 인강서원에는 진귀한 서적이 많이 소장되었다”고 소개했다. 인강서원은 장서에 대한 관리를 매우 중시했는바 장서 마다에 ‘인강서원’ 도장을 찍었고 장서의 명칭과 이름을 비석에도 새겼다. 비각(碑刻)으로 장서 목록을 보존하는 방식은 중국에서 극히 드물며 국가도서관 관사에 기재되기도 했다.

현재 인강서원 서쪽 재실(齋房)에는 청 광서16년(1890년)의 비석이 보존돼 있다. 해당 비석을 통해 당시 서원의 부분 서적 소장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인강서원 고정 자산 기록비’는 당시 인강서원의 가옥·토지 자산, 책걸상과 시설, 기존 서적 소장 상황 등을 기록했다. ‘인강서원 기부 경비 재실 건축·수선 기록비’는 1886년과 1889년에 2임 례링지현이 인강서원을 위해 경비를 모집한 뒤 재실을 건축·수선하고 도서, 책걸상을 구입한 역사를 기록했다.

 

첫 번째 기록비에는 ‘중산 학중승 전집(中山郝中丞全集)’, ‘흠정 고금 도서 집성(欽定古今图書集成)’ 등 2280여 권 기존 소장 서적의 목록이 기록됐고 두 번째 기록비에는 ‘사기(史記)’, ‘성경통지(盛京通志)’ 등 1890여 권 구입 서적의 목록이 기록됐다. 당시 서원의 장서가 무려 4100여 권에 달했는데 이는 기타 서원에서도 보기 드문 규모였다.

량강 부관장에 따르면 인강서원의 장서는 크게 4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 제자백가, 십삼경, 이십사사, 시문집, 유서(類書) 등 경서·역사서다.

 

둘째는 지방 문헌인데 대다수가 인강서원의 학생들이 편찬한 것이다. 그중에는 인강서원 학생 자오얼쉰(趙爾巽·조이손)이 편집을 주관한 ‘청사고(清史稿)’, 둥궈샹(董國祥·동국상)이 편집을 주관한 동북 지역 첫 현지(縣誌)인 ‘톄링현지’, 인강서원 교원과 학생들이 인강소학당을 위해 편찬한 교재 ‘톄링 향토 지리 역사’ 등이 있다. 해당 지방 문헌들은 인강서원의 교육 성과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셋째는 시사정치 관련 서적이다. 청 말기 ‘4대 명신’ 장즈둥(張之洞·장지동)의 ‘권학편(勸學篇)’, 변법 유신을 주장한 ‘탕씨위언(湯氏危言)’, 정치 개혁을 주장한 ‘성씨위언(盛氏危言)’ 등은 학생들의 애국심을 일깨웠다.

 

넷째는 자연 과학과 서방 문명을 소개하는 서적이다. 그중 청 말기 지리학자 쉬지서(徐繼畲·서계여)가 편찬한 ‘영환지략(瀛寰志略)’은 근대 중국인이 편찬한 첫 세계 지리를 소개하는 서적이다.

소개에 따르면 비석에 기록된 고적들 중 일부는 전란으로 유실됐고 일부는 새중국 창건 후 톄링현도서관에 옮겨졌다. 현재 인강서원에는 고적이 도합 1600여 권 있는데 그중 ‘흠정 고금 도서 집성’ 등은 국가급 진귀 고적으로 지정됐다.

 

300여 년 간, 인강서원은 동북 지역 현대 교육의 실천자, 추동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치지격물(致知格物, 사물의 도리를 연구하여 지식을 넓힌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심신을 닦고 집안을 정제한 다음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한다)’, ‘중화의 굴기를 위해 공부한다(為中華之崛起而讀書)’ 등 이념은 ‘왜 공부를 하느냐’에 대한 부동한 시대의 인강서원의 부동한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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